김도훈의 영원한 청춘
속을 알 수 없는 서늘함을 지닌 <무빙> 속 이강훈과는 달랐다. 지금 김도훈은 언제까지고 뜨거울 청춘을 보내고 있다.
BY 에디터 양혜연 | 2023.09.25
청춘은 무릇 여름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한없이 싱그럽지만, 계절을 겪어내는 이들은 뜨거운 치기, 불쾌하게 끈적이는 고뇌와 분투하는 시기니까. 그러나 그 절기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김도훈은 좀 달랐다. 자신이 남보다 나은 것이 뭘까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진다던 말에서는 봄의 연약함이, 초조했던 과거를 고백하는 눈빛에서는 가을의 아릿함이 감지됐다. 사람에게 쉽게 상처 받지만, 나아갈 원동력도 이내 사람에게 얻는다던 그에게선 안온한 보금자리를 찾는 아스스한 겨울이 설핏 배어나기도 했다. 김도훈이 머물고 있는 청춘의 성질을 계절에 빗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가 <무빙>의 오디션 당시를 회상할 때였다. 잔뜩 긴장해 손을 달달 떨면서도 묻지도 않은 이들에게 “강훈이를 꼭 맡고 싶어요”라고 절박하게 외치고, 뭔가 부족하다는 마음에 “자유연기라도 한번 보여드릴까요?”라고 물었단다. 주체할 수 없이 간절하고, 때론 예고 없이 터져버리는 열망을 지닌 김도훈은 어떠한 계절보단 사계절을 모두 품은 지구 그 자체에 가깝다. 끝없이 공전하며 날씨를 달리하지만, 표면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마그마가 속에서 끓고 있는. 그래서 김도훈에게 청춘은 위태로운 한 시절이 아니다. 자신을 두르고 있는 단단한 암석 아래는 언제까지고 뜨겁게 출렁일 영원이다.

메모는 나 자신, 사진은 주변 사람들, 즉 다 사람과 관련된 기록을 남긴다. 김도훈에게 타인과의 관계는 얼마큼 중요한가?
지난날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많이 중요한 듯싶다. 오지랖이 넓은 편이라 친구가 힘들다고 하면 위로해주고 싶고, 누구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면 축하해주고 싶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오래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친구가 문득 떠오르면 뭐하고 사는지 너무 궁금하고 그렇다. 이런 성격이다 보니 타인의 감정에 자주 동요되고,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 받아 주변에 좋은 사람만 두려 한다. 나 역시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고 좋은 말만 건네려 노력하고.
<무빙>의 강훈과는 상이한 성격일 거라 추측하긴 했는데, 확실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전 오디션을 볼 당시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라며 욕심을 냈다고.
지금도 그런데, 매 순간 ‘지금 하면 잘할 수 있겠다’ 싶은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나는 이상하게 부자 지간의 미묘한 감정을 다룬 이야기가 나오면 확 몰입한다.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 한없이 커 보이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먹먹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지 않나. 어쩌면 지금의 내가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듯해 아버지와 미묘한 감정선을 이루는 강훈이를 꼭 연기해보고 싶었다. 또 직전에 밝고 소년 같은 캐릭터를 맡았던 터라 강훈이가 지닌 진중하고 어른스러운 면을 표현해보고 싶기도 했다.
이강훈을 연기해보았기에 잘할 수 있을 듯한 역할은?
특정 역할이라기보단, <무빙>을 찍으며 몸이 따르는 대로 연기하는 법을 배웠다. 나의 안 좋은 습관 중 하나는 일상이든,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든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다. 연기를 할 때 ‘액션’ 소리가 들리는 순간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하는데 너무 많은 생각으로 어색해질 때가 있다. <무빙> 촬영 당시 감독님이 “그냥 편하게 해”라며 다독여주신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극복했다.
강훈은 대사도 별로 없고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캐릭터는 어떻게 해석했나?
시청자에게는 강훈이가 미스터리하고 비밀이 많은 친구로 보일지라도 나까지 강훈이에게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여백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했다. 말하지 않는 동안에도 강훈이는 분명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 테니까.
그 공백에 강훈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봉석과 희수가 함께 있을 땐 ‘쟤네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지?’나 ‘이런 말을 걸어볼까’ 이런 것들. 하교 후 집에 돌아온 강훈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은 “다녀왔습니다”뿐이지만 언덕을 올라 아버지가 보이는 순간 이미 ‘왜 맨날 저렇게 나와서 기다리는 거지? 아… 싫다’라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엔 ‘저렇게 매일 기다리시는데 뭐라도 말을 걸어볼까? 아, 아니다’ 이러기도 했을 테고.
아까 일상 속 우선순위에 대해 말할 때 미래의 배역을 위해 무언가를 배워두는 편이라고 했는데, 요즘엔 뭘 배우는지 궁금하다.
노래를 배우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도 즐겁지만 무대 위 연기는 또 다른 기쁨이 있으니까.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뮤지컬에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다. 그래서 어느 날 내게 기회가 왔을 때 노래 실력이 부족하단 이유로 놓치기 싫어 미리 배워두고 있다.
연예계는 다재다능한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이다. 그 속에서 차별화될 수 있는 김도훈만의 장점은 무엇일까?
음… 온도 아닐까? 사실 내가 남들보다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진다. 하지만 적어도 연기에 대한 열정, 무엇이든 도전하는 모험심만큼은 누구보다 뜨겁다고 자신할 수 있다.
김도훈의 장점인 뜨거운 ‘온도’를 잃지 않고 ‘오래’ 연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 전에 이거 해봤어 다 알아’라며 자만하지 않는 것. 누구나 한 가지 일을 오래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시기가 왔을 때 혹여 내가 완성되었다고 착각할까봐 경계한다. 그래서 연차가 한참 낮은 나와 여전히 똑같은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는 대선배님들을 현장에서 만나면 정말 존경스럽다.
인터뷰 초반, 청춘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했다. 늘 청춘이기 위해서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 ”좋을 때다”란 말 금지. 하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을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 바로 청춘이니까. 근데 진짜 웃긴 게 요즘 11살 터울의 동생을 보면 내가 이런생각을 하고 있더라. 막상 그때의 난 빨리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다.
김도훈의 인생 롤모델은?
동생. 걱정이 하나도 없다.
어? 그거 ‘좋을 때다’란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데?
그런 의미가 아니다. 걱정이 많은 나와 달리 동생은 늘 천하태평, 자신감이 넘친다. 뭘 어설프게 해도 “나 잘하지?”, 혹은 아무것도 해둔 게 없으면서 “난 다 준비됐어”이러는데 그게 너무 귀여우면서도 멋있다.
김도훈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나를 응원해주는 부모님, 소속사 식구들, <무빙>의 시청자들, 팬과 동료들. 그리고 또 등장하는 인물인데, 바로 동생. 언젠가 내게 “나는 형이 정말 자랑스러워”라고 말한 적 있는데, 언제까지고 동생에게 자랑스러운 형이고 싶다. 원동력 또한 사람으로 귀결된다. 하하, 그렇다. 내겐 사람이 중요하다.
포토그래퍼 박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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